[열일목사 에세이] 커피 한 잔 하실래요?
2022년 9월 24일
어느 날, 대리운전 첫 콜 고객이 차에 타자마자 허둥대며 미안해 하셨다. “기사님께 드릴 커피를 미리 준비하지 못해 죄송해요”라며 잠깐 정차해 커피를 사오겠다고 제안하셨다. 마침 커피가 마시고 싶기는 했지만, 감사한 마음만 받겠다고 말하고 바로 운행을 했다.
두 번째 콜은 송도. 만날 장소에 도착해 고객에게 전화를 했더니,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이라며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을 여유 있게 갖고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 도착한 고객은 운전석 옆 컵홀더를 정리하며 커피를 꽂았다. 나를 위해 준비했나 싶었지만 곧 자신이 마시기 시작했다. 내가 김칫국부터 마신 것이다.
보통 대리운전 기사가 자리에 앉으면 네비게이션 도착지 설정, 차량 시트 조절, 백미러 룸미러 조절, 자동 변속기 조절 등을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고객은 그런 시간을 주지 않고 급하게 몰아쳤다. 이유는 “주차장 무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빨리 출차하라고 재촉하며 화를 냈다. 차라리 여유 있게 와서 운전할 시간을 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주차장을 빠져나온 후, 고객은 곧바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길과는 다른 길로 가라고 고집했다. 그동안 씹을거리는 계속 자신만 챙겼다.
사실 대리운전 고객이 기사를 위해 커피 같은 간식을 줄 의무는 없다. 나 또한 그 커피를 받아 마시는 게 항상 편하지 않다.
대리운전 기사에게는 시간이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빠르게 운전하는 것이 더 낫다. 또 커피를 마시면 이뇨작용으로 곤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라도..."라는 생각이 간절했다.
누군가는 수고하는 이를 위해 말 한 마디에 위로를 담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허비한 시간에 대한 책임을 기사에게 돌렸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말과 마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말은 상대방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도구이자, 마음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내 말은 과연 누군가의 삶에 작은 위로와 힘이 되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를 오히려 실망시키고 상처를 주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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