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목사 에세이] 천천히 오세요
2023년 2월 22일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취미로 하고, 어떤 사람은 직업으로 삼는다. 요즘은 취미로도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반적으로 취미와 직업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같은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투자하는 시간의 차이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차이는 전문적인 장비의 유무다. 흔히 말하는 ‘장비빨’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인테리어 공사나 도배 공사하는 분들을 보면, 실력도 뛰어나지만 생전 보지 못한 전문 장비들이 즐비하다. 역시 프로는 아마추어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대리운전의 세계에도 이와 같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존재한다. 대리운전 기사들 사이에서도 운전 실력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차이는 경험과 데이터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서 많은 콜이 발생하는지, 어떤 지역으로 가는 콜은 피해야 하는지, 오지에서 도심으로 어떻게 탈출해야 하는지, 만취한 고객의 다양한 클레임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이 모든 것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실력의 차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아직 초보자에 불과하다. 실력 차이도 엄청난데, 문제는 여기에 장비 차이까지 더해진다는 것이다.
뚜벅이로서의 어려움
나는 ‘뚜벅이’다. 즉, 콜을 받으면 고객이 있는 곳까지 두 발로 걸어가야 하는, 장비가 없는 운전기사다. 이런 상황에서는 반경 1km 내의 콜만 잡게 된다. 멀리 있는 콜을 잡아도 시간과 방법의 한계 때문에 그곳까지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동킥보드나 전동휠 같은 장비를 갖춘 기사들은 다르다. 그들은 반경 2km, 3km, 5km 이상의 콜도 잡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더 많은 콜의 기회를 얻고, 높은 단가의 콜을 선택할 수 있다. 고객이 있는 곳까지 숨을 헐떡이며 뛰어갈 필요도 없다.
물론 뚜벅이로 콜을 잡았을 때, 대부분의 고객은 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하지만 간혹 "천천히 오세요"라고 말해놓고도, 1분 간격으로 전화해 "어디냐", "왜 빨리 안 오냐"며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달려가면서 전화 통화를 하다 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땀에 범벅이 된 상태로 겨우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낯선 차 안에 앉았을 때, 온몸에서 맥박이 뛰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덕분에 자동 다이어트 효과가 있지만,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대리운전 유경험자들의 따뜻한 말
어느 날, 일산 웨스턴돔에서 올라온 콜을 뉴서울쇼핑사거리에서 잡았다. 아무래도 10분 이상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먼저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고객님, 10분만 기다려 주세요. 곧 찾아뵙겠습니다”라고 전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천천히 오세요. 빨리 오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뛰지 마세요"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 순간 생각했다. “더 이상 그 말에 속지 말자. 조금 있다가 또 재촉하는 전화가 걸려올 거야.”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기에 열심히 뛰었다. 그렇게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뛰어 고객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얼핏 보니 고객의 연배가 나와 비슷해 보였다. 역시 심장은 쿵쾅거리고, 겨우 숨을 고르고 있을 때, 고객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왜 뛰셨어요? 천천히 오시라니까요. 요즘 콜이 많나요? 코로나 때문에 어려우시죠?" 처음엔 뭔 일인가 싶었다. 왜 이렇게 다정하지?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고객이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저도 대리운전 했었어요. 그래서 기사님들 상황을 잘 알아요. 그래서 뛰지 마시라고 했던 거예요." 역시 유경험자였다. 게다가 주차를 마치고 내리려는 나에게 "이 앞으로 쭉 나가서 오른쪽으로 더 올라가시면 콜이 많이 발생하는 곳이에요."라며 지역에서 콜이 많이 뜨는 먹자골목까지 안내해 주었다.
한 달쯤 후, 비슷한 출발지에서 또 다른 콜을 잡았다. 이번에도 도착지가 지난번과 비슷해 신기하게 생각하며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자동차도 고객도 지난번의 ‘스윗가이’ 고객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 고객도 나에게 뛰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차 안에서 나눈 대화의 흐름도 스윗가이와 비슷했다. 이 고객도 대리운전 유경험자였다.
두 고객 모두 나에게 뛰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두 고객은 모두 대리운전을 해본 사람들이었다. 터질 듯 뛰어대는 심장 박동으로 인한 불쾌한 감정들이, 동일한 상황을 경험해본 사람들의 한 마디에 큰 위로로 바뀌었다. 동네가 좋은 건지, 사람들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천천히 오세요. 뛰지 마세요.” 이렇게 이해받고 위로받는 날만 계속된다면, 초보여도 괜찮고, 뚜벅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일하는 목사로 살면서 겪는 이런 경험들이, 어딘가에서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있을 영적인 뚜벅이들을 위로하고 이해하며 격려하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 두 스윗가이 고객님들 덕분에 좋은 깨달음을 얻었다.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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